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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근대의 발명품이 아니다. 석기 시대 이후 인류가 ‘건축물’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을 짓기 시작하면서, 계단은 늘 인류 곁에 있었다. ‘세계 최초의 도시’라 불리는 요르단의 예리코(Jericho)에서는 무려 기원전 8,000년 경 만들어진 계단이 발견되기도 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더스와 황허. 문명이 발달한 곳에는 늘 계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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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계단은 ‘발자국’이었다고 여기는 시선도 있다. 인간들이 계속 반복해 고저 차가 있는 한 지형을 오갔고, 그 발자국들이 모여 만든 풍화로 자연스레 계단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계단은 ‘물질적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공적 도구’라기보다는, ‘자연 지형에 순응해서 맞춘 노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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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다층 건물 내외부를 오르내리기 위한 수단으로 본 ‘기능주의적 인식’은 15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이전의 ‘계단의 역사’는 계단의 역사라기보다는, 계단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역사에 가까웠다. 고대로 돌아가 보자. 이때의 계단은 ‘하늘을 섬기기 위한 조형물’이었다. 하늘을 향해 높게 뻗어가는 계단은 지극히 종교적인 상징의 역할이었다. 바벨탑과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ziggurat)가 대표적인 예. 이런 시선은 후세에도 남아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천국으로 가는 계단)’ 등 곡에 표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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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는 ‘나선형 계단’만이 사용되었다. 로마 문명의 쾌락주의가 점차 쇠퇴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 나선형 계단은 점차 거대화돼, 봉건영주들의 지위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는 움베르토 에코가 그의 저서 <기호: 개념과 역사>에서 ‘건축 기호학’에 관해 계단을 예로 들어 설명한 부분에서도 읽을 수 있다. “계단은 그 자체의 기능을 외시하며 그것을 오르는 사람의 지위를 내포할 수도 있다.(화려한 계단, 등대의 나선형 계단 등.)” 대부분 건물 외부에 자리했던 계단은, 이 시기부터 실내에 자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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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계단은 점차 정교화되었다. 18세기는 ‘공공성’이라는 개념의 등장으로, 공공물로서의 계단을 비롯한 건축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던 시기다. 19세기에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더 높은 건물’과 ‘더 높은 계단’을 만들어냈다. 건물과 계단이 인류가 엘리베이터에 익숙해진 후, 계단은 불편한 무언가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쉽게 계단을 대체할 것들이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고, 계단을 오르는 일은 그에 비해 어렵고 힘든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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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층이 아닌 한, 계단 없는 공간을 떠올리는 일도 쉽지 않다. 계단의 대체재는 항상성이 없고, 불안정성을 띠고 있으며 때로는 그 자체가 사고의 위험이 되기도 한다. 전력이 끊어지면 엘리베이터는 단 한 층도 오고 갈 수 없다. 때때로 낡은 승강기에는 추락의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다. 계단만이 오래도록 굳건하게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 또 아래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오늘 온종일 지나친, 또 밟아온 계단의 수를 생각해보라. 아무리 엘리베이터가 발달되어 있다고 한들, 계단 없이 살아낸 날을 단 하루라도 꼽기 어려울 것이다. 계단은 우리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위아래로 이끌며, 우리에게 더 높은 일상을 선물하고 있다. 우리에게 다른 높이를 선물해 오브제,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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